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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및 복지정보

1월영양소식

작성자
최은미
등록일자
2017년 1월 23일 0시 0분 0초
조회
407

설날


설날은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로,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하며 덕담을 나누는 풍습이 있다. 설날에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 하고, 어른들을 찾아뵙는 일을 세배라 하였다.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이라고 하고, 이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이라고 하는데, 세찬으로는 떡국을 먹었다. 설날의 놀이로는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이 있다. 설날 이른 아침에는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두는데, 이것을 복을 담는 ‘복조리’라고 한다.


떡국

순수와 장수를 뜻하는 새해 첫 음식

설날에는 ‘떡국 차례’라 하여 밥 대신 떡국을 올리는데, 차례 올린 다음에는 가족이 모두 음복하고 나서 부모님과 어른들께 세배를 올린다. 우리는 설날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한 살을 더 먹는다고 생각한다. 차례를 올리지 않는 집에서도 설날 아침에는 모두 떡국을 먹는데 왕실에서부터 양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흰떡으로 만든 똑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정월 초하루에 떡국을 먹는 이유에 대해 문헌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흰떡가락이 희고 길어 순수와 장수()를 의미하므로 새해의 첫 음식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새해에 세배꾼에게 대접하는 음식상을 세찬()상이라 하며, 떡국에 나박김치와 식혜나 수정과, 과일 따위를 낸다. 술을 먹는 사람이면 술과 안줏감을 더 내고, 아이들 상에는 음식은 조금 놓고 과일, 엿, 유과 등을 많이 놓아 준다.

떡국을 하려면 긴 가래떡을 썰어야 하는데 바로 빼 온 것은 척척 들러붙어 썰기가 마땅치 않고 지나치게 꾸드러지면 썰기가 너무 힘들다. 하룻밤 정도 굳힌 다음에 납작납작하게 돈짝처럼 썬다. 가래떡이 많으면 물에 담가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건져 쓰기도 하였다. 요즘 봉지에 담아 파는 흰떡은 너무 길게 썰어 품위가 없다.

떡국은 국물이 맛있어야 하는데 정식으로 하려면 소의 사골이나 양지머리, 사태 등을 오래 고아서 국물로 사용해야 한다. 양지머리는 건져서 얇게 썰거나 가늘게 뜯어서 양념한 다음 건지로 얹는다. 떡국 꾸미는 집안이나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떡이 익을 무렵 달걀을 풀고 구운 김을 뿌린다. 꾸미를 제대로 하려면 달걀 지단 채와 다진 쇠고기를 양념하여 볶아서 한 수저씩 얹고 후춧가루를 약간씩 뿌려 내고, 쇠고기 산적을 지져서 얹기도 한다. 끓여 놓고 오래 놔두면 불어서 맛이 없으므로 먹기 바로 전에 끓여 낸다. 요즘은 떡국에 만두를 섞은 떡만둣국도 즐겨 먹는데 이북 출신 사람들이 정월에 만둣국을 즐겨 먹는 풍습 때문에 생긴 음식으로 보인다.

문헌에 나오는 떡국

조선조의 서울 풍속을 적은 『열양세시기()』(1819년)에는 “좋은 쌀을 빻아 체로 쳐서 고수레(흰떡을 만들 때 쌀가루에 끓는 물을 훌훌 뿌려 섞어서 물이 골고루 퍼지게 하는 것)한 다음 시루에 쪄서 안반 위에 놓고 떡메로 친다.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서 둥글고 길게 문어발같이 늘이는데 이것을 권모( : 골무떡)라고 한다. 먼저 장국을 끓이다가 펄펄 끓을 때 떡을 돈 모양으로 잘라서 국에 넣는다. 끈적끈적하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게 알맞게 끓이며 돼지고기, 쇠고기, 꿩고기, 닭고기 등을 섞어 끓이기도 한다. 제석( : 섣달 그믐날)에 식구대로 한 그릇씩 먹으니 이것을 떡국((병탕))이라고 한다”고 적혀 있다.

『경도잡지()』(1800년대)에서는 “멥쌀로 떡을 만들어 치고 비벼 한 가닥으로 만든 다음 굳기를 기다려 가로 자르는데 모양이 돈과 같다. 그것을 끓이다가 꿩고기, 후춧가루 등을 넣어 만든다. 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을 떡국 그릇 수에 비유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궁중의 잔치 기록을 보면 떡국은 익종의 비()인 조대비의 환갑을 축하하는 진찬(1868년 11월) 때에 한 번 나왔는데 잔칫상에 올린 것이 아니라 악공()과 여령()들의 밤참이었다고 한다. 떡국 재료로는 흰떡인 권무병() 2,000개와 등심((우배심육)) 3부, 도가니 4부와 간장(진간장) 2되가 쓰였다고만 적혀 있다. 도가니로 국물을 낸 다음 흰떡을 넣어 끓이고, 등심으로 산적을 하거나 채 고명을 꾸미로 얹은 듯하다. 때가 설이 아닌 것으로 미루어 평소에도 단체 급식용으로 떡국을 이용했음도 알 수 있다. 또 궁중에서는 한여름에 복날의 별식으로 떡국을 먹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그 밖의 떡국

개성 지방의 떡국 떡은 누에고치처럼 가운데 부분이 잘록한 것으로 조랭이떡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누에가 길함을 뜻하기 때문에 누에고치 모양으로 빚었다고도 한다. 홍선표의 『조선요리학()』에서는 “전국적으로 백병(흰떡)을 어슷어슷 길게 썰지만 조선 개국 초에 고려의 신심()으로 떡을 비벼 경단 모양으로 잘라내어 생떡국처럼 끓여 먹는데 이를 조롱떡국이라 한다”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탕병()이란 원래 국물이 있는 밀가루 음식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제민요술()』에도 탕병에 수인( : 국수), 불탁( : 수제비), 전탁(?? : 만둣국), 기자면( : 밀가루 가래떡국) 등이 있다고 씌어 있다. 떡국은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중국 서남부에서도 설 음식의 첫째로 꼽았다. 무처럼 둥근 떡을 새끼손가락 굵기로 잘게 썰어 끓이며, 우리처럼 떡을 물이 담긴 큰 독에 보관한다고 한다. 또 하북성()에서는 떡을 둥글게 돈 모양으로 썰어서 끓이는데, 김광언 교수는 『민속지』에서 일 년 내내 돈을 모은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였다.

떡국은 조리 과학적인 면에서 볼 때 굳어서 노화된 떡을 더운 장국에서 부드럽게 익힌 훌륭한 조리법의 음식이다.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 식성에도 잘 맞아 요즈음은 정월만이 아니라 대중적인 한식 일품 음식으로 연중 인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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